6) “Marble Hornets”, Youtube, 2009.06.20.~2014.06.20.
“이제부터의 영상들은 알렉스 크랠리(Alex Kralie)에게서 발췌한 무편집 촬영분(raw footage)이다. 그는 나의 대학 친구이다. 2006년, 알렉스는 <마블 호넷>이라 이름 붙여진 졸업영화를 촬영하는 중에 있었다. 이것이 진행되던 세 달 이상 동안, 촬영 크루는 그의 스트레스와 과민함의 정도가 증가하는 것에 불평했다. 촬영이 끝에 다다를 무렵, 알렉스는 제작을 무기한 중지한 후 미완의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는 이것이 세트장에서의 ‘일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라 얘기해줬는데, 그곳은 알렉스의 집에서부터 1.6km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셀 수 없을 정도로 채워 넣었던 테이프들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태워버려.’ 나 또한 영화과 학생이었던 만큼, 그의 작업 모두가 버려지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고, 얼마간의 강요 후에 그는 나에게 테이프들을 주는 것에 동의했다. 내가 그에게 이것들을 절대로 언급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곧이어, 알렉스는 다른 학교로 편입했으며 나는 그 이래로 그를 보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테이프를 볼 용기가 너무 없었으며, 결국에는 그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옷장 뒤편에 그것들을 보관했다는 걸 며칠 전에 알게 됐다. 삼 년이 지나고 알렉스와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은 뒤, 나는 이걸 봐보기로 결정했다. 모든 테이프에는 순번이 없었으며 일자가 기록되지 않았다. 2006년 여름에 촬영되었다는 점을 빼고, 각각의 정확한 순서나 날짜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 중 어느 것에서라도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업로드하겠다.”8) <Welcome to the Page of Ted>, Angelfire, 2001.03.23.~2001.05.19.
“우리 집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동굴에서 겪었던 저의 발견과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해달라는 요구를 벅차도록 많이 받아버려서, 이 웹페이지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제가 발생한 사건들의 개요를 그릴 거예요. 2000년 12월에 익숙한 동굴로 향했던 여정으로 시작한 후에 끝이 나는 건... 그게, 정말로 아직 끝나지는 않았어요. 저의 캠핑 저널을 최근 경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텍스트로 사용할 겁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를 제가 경험했던 대로, 시간 순서대로 설명해드릴 것입니다.”9) “The Rake”, Creepypasta Wiki, 2005.
“야 /b/ 새 괴물이나 만들자”로 시작된 2005년도의 포챈 게시물에서 시작된 ‘레이크’는, <마블 호넷> 이후 나타난 여러 슬렌더맨 계열 채널인 <에브리맨하이브리드(EverymanHYBRID)>에서도 등장하는 등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처음의 게시물에서는 섬뜩하게 보일 외형들의 세부사항과 같은 겉면이 제작되고, 이후에 5년 걸쳐 로어화가 착실히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10) “Jeff the Killer”, Creepypasta Wiki, 2005.
제프 더 킬러의 저 짜증나는 면상은 분명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후처리를 취해서 만들어졌을 텝니다. 그렇지만 그 ‘원본’이 정확히 어떠한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죠. <로스트 미디어 위키>에 의하면 2005년 당시에 일본의 이미지보드에서 두 버전의 이미지들이 떠돌았다는데, 빛 조절을 잘못해 얼굴 전체가 섬뜩할 정도로 새하얗게 보이는 정도였던 위의 이미지에 흰자위 가득한 사백안 처리와 빨간 마스크식 미소로 재가공을 한 지금의 버전이 득세했다고 하네요. 이 겉면에 로어가 붙어지는 데에는 3년여가 걸렸습니다.11) “Smile Dog”, Creepypasta Wiki, 2008.
12) “I Feel Fantastic — FULL SOURCE (HD)”, Yitz, Youtube, 2018.11.13.
“난 환상적인 기분이야 (헤이 헤이 헤이)13) “username:666”, nana825763, Youtube, 2008.02.27.
nana825763 혹은 ‘피로피토(PiroPito)’는 2000년대 중순부터 현재까지 ‘저주 받은 악마의 영상’을 시작해 ‘유튜브에서 가장 기이한 동영상’을 지나 ‘어린 시절 인터넷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 족적을 남겼으며, 저러한 내용물에 비해 제작자 본인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이며 (2010년대 중순 이후로 그는 개미사육 영상과 마인크래프트/호러게임 제작 실황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적인 장인정신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소 & 소 & 소(Cows & Cows & Cows)>로 유명세를 탔으며 유사한 영상뿐만 아니라 장기를 살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보노보(Bonobo)의 “Cirrus”와 같은)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한 시리악(cyriak)이나 2004년부터 뉴그라운즈(Newgrounds)에서 제작된 시리즈 <샐러드 핑거즈(Salad Fingers)>로 유명한 데이비드 퍼스(David Firth)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14) “barbie.avi”, xenopasta, Youtube, 2009.08.10.
15) “Obey the Walrus”, Θ_Θ, Youtube, 2008.01.26.
16) <lonelygirl15>, Youtube, 2006.06.16.~2008.08.01.
17) “Create Paranormal Images”, Victor Surge, Somethingawful, 2006.02.02.
“우리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을 죽이고 싶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그 완고한 침묵과 뻗쳐진 팔들은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동시에 안정을 주기도 했습니다...”그렇지만 이 시기의 크리피파스타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으로 섬뜩하다 붙여볼 수 있는 건 <소름끼치는 수프 인간 (freaky soup guy)> 혹은 <블랭크 룸 수프 (Blank Room Soup)>일 거예요.
<레인봇(Reignbot)>의 영상에서 많은 내용들을 참고해 다시 적는데, 레이레이(RayRay)라는 이름의 퍼포먼스 예술 그룹을 이끄는 레이먼드 퍼시(Reymond Persi)는 (유튜브의 자체적인 상품화와도 긴밀히 얽혀있는 피규어 시리즈인) 펑코 팝(Funko Pop)과 꽤나 닮아 있는 동명의 마스코트 캐릭터를 제작합니다. 정확히는 해당 캐릭터의 탈을 쓰고 무대 위로 올라가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겠지요.
어느 날의 공연 이후, 레이레이 인형 탈의 대부분이 도둑맞은 이후, 그의 메일주소로 해당 영상이 보내졌다고 합니다. 새하얀 방에서 울먹이며 국을 떠먹는 남성이 앉아있고, 그 뒤로 레이레이의 탈을 쓰고 장갑을 낀 검은 옷의 인물 둘이 다가와 그를 쓰다듬는 내용으로요.
그리고 내용은 이게 다입니다. 레이레이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이메일은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러므로 설명 불가능한 사건인 정도며, 여기에는 주어진 영상이라는 겉면만 있을 뿐 그 어떤 로어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른바 ‘딥웹’에서 떠돌아다니는 알 수 없는 고문 스너프 영상이 수면 위로 솟은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퍼지진 했지만, 여전히 <블랭크 룸 수프>에는 그 어떤 그럴싸한 로어도 분명하게 판가름되는 사실도 덧붙여지지 않고, 저 모든 식사 장면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크리피파스타 시기의 많은 작업물들이 대부분, 이 표현을 굳이 쓰라면 이 때뿐이겠으나 '주작질'이었던 것에 비해, 가끔씩은 이렇게 정말로 온전한 뒷이야기나 실제 출처가 오리무중에 빠진 무언가들이 수면 위로 부상합니다. 또한 앞으로 많이 보시겠지만 수많은 자체 제작된 크리피파스타와 ARG들도 어느 정도 애매모호한 상태와 위치를 고수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들의 마법을 어느 정도 공개하며 로어화의 저주에 몸을 맡기게 될 수밖에 없을 때가 만힉도 하고요. 우리를 정말 공포에 질리게 하는 건 아무리 뒷면을 찾으려 애를 써도 주어진 겉면만이 전부인 무언가들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실화 괴담'들을 긁어모으는 텔리비젼 쇼와 별다를 바 없는 유튜브 채널들에 의해 수집되어 해당 수집가들 대부분도 그럴싸한 뒷이야기를 부착하지 못한 채 겉면만을 내세울 뽄이지요. 악명 높은 '엘리사 램(Elisa Lam) 사건'의 CCTV 영상이나, '마우라 머레이(Maura Murray) 실종 사건'과 뒤얼힌 의문의 채널/영상인 112dirtbag 등을 그저 호러/미스터리로서 받아들이기가 껄끄러워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 무엇이든 좀 더 그럴싸한 괴담으로 뒤바뀌는 로어를 부착해 '강탈'해오는 일과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영영 해결되지 못할 미결 사건이나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에 대한 열광은 그러한 의미에서 크리피파스타나 ARG가 작동하는 법과 반대의 방식으로 대체현실을 삽입합니다. 여하튼 제작된 허구인 이 작업물들이 대체현실의 포장을 만들어 현실에 덧씌운다면, 실제 사건들의 로어화는 현실의 표면을 대체현실로 뒤바꾸는 셈이지요. 허구적인 대체현실의 포장지는 좀난 손을 쓰면 수월하게 벗겨낼 수 있거나 아님 포장이 맘에 든 채로 내버려둘 수 있으나, 현실을 대체현실로 아예 깎아내버리는 일을 되돌리기는 쉽지가 않고요.
<블랭크 룸 수프>는 어디까지가 포장지이고, 어디까지가 새겨진 것일까요? 포장지였을 뿐인 슬렌더 맨이라는 대체현실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상흔으로서 새겨졌습니다. 밑에서 언급될 황재민 님을 다시 가져오자면, '괴담이 성공적으로 변할수록, 마침내 실체를 얻은 이후, 즉각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직시할 수 있을까'요? "크리피파스타 레시피"의 후반에서 언급되는, 이 모든 ARG놀음들이 세계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게만 느껴질 2017-8년 동안 연재된 작업물인 <데이지 브라운>은, 그러므로 2010년대 초중반의 난장판에 대한 회고적인 반영이며 갱신이자 어쩌면 잠깐 동안이라도 해독재나 탈출구가 되어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