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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Too Many Cooks”, Adult Swim, Youtube, 2014.11.08.

적어도 미국에서 8-90년대 시트콤과 특히나 그 인트로의 패러디는 <컬리지 유머>부터 <SNL>까지 한 번 쯤은 짚고 넘어간 거 같습니다. 대부분은 그 양식이 얼마나 '인위적인지'를 건드는 듯 하는데, <투 매니 쿡스> 이후로도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작정하고 90년대 시트콤을 호러로 만들어버리는 작업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네요.

96) <alantutorial>, Youtube, 2011.06.23.~2014.12.13.

(앨런 레즈닉에 대해서는 사실 챕터 하나를 들여서 작성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식이 되었네요. 그러므로 세 개의 주석을 들여서, 그에 대해 잠시 쓰다 말았던 미완의 원고를 게재합니다.)

이런 로어화의 과정은 실로 다양하게 이뤄진다. 슬렌더맨의 경우 빈 공간들이 많았던 작업물을 둘러싼 여러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반쯤 공식적인 로어로서 굳어가며, 캐릭터의 이야기는 점차 자세해져갔다. 아니면 그렇게 등장한 몇몇 슬렌더맨 게임들의 인기에 뒤이은 것 같은 호러 게임 시리즈 <프레디 네에서의 닷새 밤 (Five Nights at Freddy's)>가 점프 스케어에 의존했다가 차차 “로어에 무게를 더 실어 (lore heavy)” 팬들의 과다분석과 호응을 이끌어낸 것처럼, 제작자 쪽에서 전략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게도 로어화를 둘러싼 긴장은 늘 제작자의 방식대로 무언가를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으려는 작업물 자체와 이에 억지로라도 “해석 (Explained)”을 붙여보려는 독자와 시청자들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다. 제작자가 외부적인 로어화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자기 스스로의 로어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예술·퍼포먼스 그룹 왬 시티(Wham City)에 속한 제작자 앨런 레즈닉(Alan Resnick)이 주로 온라인상에서 발표한 몇 작업물들이 어쩌면 한 가지의 방식을 보여줄 수 있겠다.

97) “Unedited Footage of a Bear | Infomercial”, Adult Swim, Youtube, 2014.12.17.

레즈닉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영상들이 업로드된 <앨런튜토리얼(alantutorial)>이라는 채널로 본격적이게 알려진다. 시리즈는 높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앨런이 특정 작업을 완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들을 엉성하게 실연하는 몇 개의 영상들로 시작된다. 앨런 특유의 엉뚱함과 진행되는 튜토리얼의 사소함 때문에 약간은 요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만, 이외에는 별 다르게 기이하지는 않다. 하지만 갈수록 앨런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불안한 낌새가 풍기더니, 어느 순간 그는 잠긴 방을 탈출하고 숲으로 도망친 후, 낯선 이들에게 납치되어 하얀 방에 감금된다. 점차 실성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튜토리얼을 작업하려는 앨런은, 끝에 가서는 쓰레기로 가득 찬 어두운 방에서 오물로 뒤덮인 채 “튜토리얼”만을 중얼거리는 영상 몇을 남기고 더 이상 업로드하지 않는다. 꽤나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이 내용들에서 시청자들은 말이 되는 뒷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에 따라 그의 영상에서 나타난 모든 세부사항들이 불러들여진다. 앨런이 아직 자신의 방에서 영상을 만들었을 때 들려오던 문 두드리는 소리나 에어컨을 다루던 그의 손에 묻은 피, 애초에 앨런이 꾸준히 튜토리얼 영상을 만드는 이유 자체까지. 앨런은 왜 어느 영상에서 파란 의자를 일으키지 못하고 울기만 했을까? 언뜻 언급되는 형제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후의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인가?

98) “This House Has People in It”, Adult Swim, Youtube, 2016.03.15.

이런 의문들이 그럴싸한 설명으로서 풀리기에, <앨런튜토리얼>에서 오직 앨런의 시점으로만 주어진 정보도, 그 사이의 빈틈도 너무나 적을 뿐이다. 앨런이 정확히 어떤 사람이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추측들은 반쯤 고정된 해석본으로서의 로어가 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단순한 짐작으로서만 미끄러진다. 앨런의 튜토리얼들 대부분이 분명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쓸모없는 방향으로 흘러내리듯 말이다. 남아있는 것은 그저 괴짜 같은 남성이 튜토리얼을 만들다 숲으로 탈출해 어딘가로 납치당해 미쳐버리는 과정에 대한 기록뿐이다.

99) “My house walk-through”, nana825763, Youtube, 2016.10.16.

100) <Poppy>, Youtube, 2014.11.05.~

배우이자 코미디언이라는 네이선 버넷(Nathan Barnatt)이 2019년에 개설엔 유튜브 채널 <아빠 (Dad)>에서 파피가 떠오른다면 너무 멀리간 걸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꽤나 시대착오적이게 느껴질 ARG 구성으로 미스터리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영상들 사이사이에 일반적인 다른 인기 유튜브와 같은 "컨텐츠"들이 들어가는 꼴은 보다 코미디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101) “NO LOVE DEEP WEB”, Death Grips, Internet Archive, 2012.10.01.

현 시점까지도 가장 최근 정규 음반이 2018년작 <쥐새끼의 해 (Year of the Snitch)>인만큼, 데스 그립스는 시간이 지나면 더 지날수록 2010년대의 인터넷에 못박혀 있는 팀이 될 것입니다. 머지 않아 보시게 될 '커스드'에 이래저래 가까운 음반 커버와 뮤직비디오의 미감부터, 단순명쾌하고 반복적인 구조에 비해 거칠고 날 선 소리들(이 소리들은 프린터기부터 스스로들의 트랙까지를 끝장나게 왜곡시킨 샘플들이지요)로 공격성 가득한 내용물, 프론트 퍼슨인 MC 라이드(MC Ride)가 고함에 가깝듯이 내뿜는 랩까지, 데스 그립스를 2010년대 인터넷의 컬트로서 자리매김하게 해준 수많은 요인들은 특유의 호전성과 임의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물론 인터넷 상의 특정 공간들을 항해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몇몇 광경들의 성질과도 많이 닮아있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트랙들을 언급하자면) "Beware"나 "Hot Head"처럼 굵고 짙은 다혈질의 위악으로 폭발해버리거나, 아니면 "Bird"나 "On GP"가 보여주고 들려주듯 그 속에서부터 일말의 진실함이 흘러나오거나, 데스 그립스는 잭 힐(Zach Hill)의 사정 없는 드러밍과 앤디 모린(Andy Morin)의 저돌적인 시퀀싱으로 우악스럽게 지어낸 요새의 적대적인 겉표면을 철저하게 과시합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모종의 신비함은 인터넷상에서의 익명성이 발휘하는 그것과 제법 닮아있고, 다시 한 번 저품질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둘둘 두른 모습까지 그들의 수수께끼 같은 형상을 완성하는 듯싶네요. 그러므로 "데스 그립스가 온라인이다 (Death Grips is Online)"라는 문구만큼, (20년대로 들어와서는 거의 내내 오프라인인) 이들의 상태를 가장 잘 수식하는 표현도 없을 텝니다.

102) <Don't Hug Me .I'm Scared>, Youtube, 2011.07.30.~2016.07.20.


"가장 좋아하는 개념이 뭐야? 나는 창의적이게 되는 거."

[대체 현실 유령]에서 이 모든 과정들을 상징할 수 있을 단 하나의 작업물을 골라야만 한다면, 저는 <안기지마 무서워>를 고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장은 이렇게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기보다는 앨런 레즈닉과 DHMIS가 중심에 와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 만큼 그 내용물에 대해서도 주절주절 떠들 수 있지만, 그보다는 시리즈 자체가 어떠한 생을 살았는지에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2011년도에 첫번째 에피소드가 등장했을 때에만 하더라도, 이는 당시에 막 인기를 타던 리액션 비디오(이런 영상들을 끝없이 생산해내는 채널들의 거의 유사한 표정과 구성의 썸네일을 내려다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요)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이때의 '반응'은 물론 첫번째 <DHMIS>가 유튜브 시청자층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거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린이용 프로그램의 외관에서부터 곧장 더 어둡고 징그러운 쪽으로 뛰어드는 내용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리액션 영상으로서의 '반응'은 첫편에 모여든 크고 작은 충격파들에 대해 참으로 적절하게도, '반응'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베키 슬로언(Becky Sloan)과 조셉 펠링(Joseph Pelling)을 중심으로 창작되는 단편들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이들 또한 킥스타터 모금 끝에 이후의 5년 동안 차근차근 웹 시리즈의 6편까지를 업로드하면서, 시리즈를 둘러싼 세계가 바뀌어갑니다. 당장에 링크를 삽입했던 파인 브로(Fine Bros)의 리액션 채널에서 끝없는 콘텐츠 재생산을 위해 이후의 시리즈들 또한 '리액션'의 대상으로 삼으며, 시리즈의 진행에 '반응'하는 유튜버들은 맨 처음처럼 즉각적인 충격이나 놀람을 표한다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그 뒷면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측하는 식이 되었고요. 해당 채널에 단골로 초청되는 유튜버이자 '로어' 분석 채널로서 악명 높은 맷팻(MatPat)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입니다. 2011년에서 2016년까지의 기간 동안, <DHMIS> 시리즈는 인터넷 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끔찍한 원인불명의 반응 대상이었다가, 갈수록 그 내막의 숨겨진 단서들을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만 하는 분석 대상으로 바뀌어갔지요. 텀블러(Tumblr)와 같은 팬덤 중심의 블로그 사이트들에서 등장인물들의 보다 많은 '캐릭터화'가 이뤄지는 과정 또한 여기에 겹쳐집니다.

다만 정말, 정말 흥미롭게도, <안기지마 무서워>는 온라인 상에서 큰 인기를 탔던 수많은 호러 작업물들 중에서 닿아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 그러니까 정식 TV쇼까지 올라갔다는 데에서 이 나머지의 6년이 채워지겠네요. 원래 6부작으로 계획되었던 웹 시리즈의 종영 이후, 제작자들은 영국의 텔레비젼 채널인 채널4에서 제작 주문을 받습니다. 2022년 현재 성공적으로 방영을 마친 만큼 나름 정겹게 돌아볼 수 있었지만, 웹 시리즈의 종영 이후부터 예고되었던 TV판은 2018-19년도의 정식 공개되지 않은 파일럿과 같은 극소수의 사건을 제외하고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듯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부터, 무엇보다도 오로지 인터넷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수많은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 기어이 인터넷 바깥에서 생명줄을 이어가고자 할 때 얼마나 처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지는 충분히 아시거나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안기지마 무서워>의 TV판 6부작은 웹 시리즈 6부작 때에 다져놓은 요소 중에서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확실하게 발전시켜놓았지요. 저는 이것이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즈가 말 그대로 10년이 넘어버려 웹 시리즈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서서히 생겨나는 한편, 특정한 텔리비젼 쇼의 겉면을 띤 채 보다 이상하고 섬뜩하게 느껴질만한 내용물들을 (대부분의 사물들이 헝겊 같은 재질을 띤 대체현실이 사실 이쪽의 현실처럼 피와 살과 뼈로 이뤄졌음을 보이는 장면처럼) 담아냈던, 오로지 인터넷에서만 가능할 거 같았던 시리즈가 그 자체의 성질을 전혀 죽이지 않은 채 바로 그러한 텔레비젼 쇼가 되었다는 점이요. <DHMIS>가 웹 시리즈에서 TV쇼가 되어가는 이 10년 넘는 과정이야말로, 여러 의미에서 [대체 현실 유령] 속 여러 작업물들이 겪는 경로의 가장 잘 된 버전인 동시에, 그러므로 가장 의미심장한 상징이 되는 것도 같네요. 웹 시리즈에서도 TV판에서도 <안기지마 무서워>는, 바로 그러한 텔레비젼과 그 대체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택하니까요.

103) “07/27/1978”, lasagnacat, Youtube, 2017.02.24.

<라자냐 캣>은 이만큼의 제작 비용을 들어서 만든 듯 보이는 외피를 쓴 작업물들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곳에서 요상해지는 쪽입니다. (다시금, 이때까지의 많은 온라인 호러 양식들이 이래저래 각자의 완결을 맞는 것만 같던) 2017년에의 복귀 이후, 1시간짜리 <07/27/1978>보다도 더더욱 긴 4시간 40분짜리 영상이 시리즈의 피날레가 되었으니, 그건 <섹스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원조 <가필드> 스트립을 패러디한 존, 오디, 가필드가 소파에서 신문을 읽다가 노크 소리에 응답을 하면, 열린 문턱의 마네킹이 자신의 진명 혹은 가명과 함께 여태껏 가졌던 섹스 파트너의 수를 말하는 약 2-30초의 구간이 무려 280분 내내 거의 반복되는 걸로 이뤄져 있죠. 앞선 주석에서 잠깐 언급했던 '90년대 시트콤 패러디 호러'와 어느 정도 닮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매 구간의 반복은 신문 코믹 스트립을 매개로 한 전환 효과와 인위적으로 삽입된 웃음소리들로 이어져 있기도 합니다. 이건 그러니까 <가필드>가 재미 없는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일까요, 아니면 그저 섹스 파트너 수에 덧붙여 둘러대는 익명 제보자들의 말들이 웃긴 걸까요? 영상이 진행되는 내내 시간은 아주 느리게 저녁으로 흐르고, 이 알 수 없는 시리즈의 끄트머리가 다가옵니다. 그 부분만 직접 확인하셔도 좋겠네요. 저는 이 시리즈의 요점을 도저히 못 알아먹겠습니다.

104) <Fredrik Knudsen>, Youtube, 2016.08.09.~

우물이 깊어서인지, 아니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가장 먼저, 앨리스는 아래를 보고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옆으로 눈을 돌려 우물 벽이 찬장과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도며 그림들도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앨리스는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에 한 선반에서 “오렌지 마멀레이드”라고 쓰인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몹시 실망스럽게도 병 안은 텅 비어있었다. 앨리스는 병을 그냥 떨어뜨리면 아래에 있는 혹시 누가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떨어지면서도 간신히 다시 찬장에 병을 집어넣었다.

“이 정도로 떨어져 봤으니, 이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아니겠는걸! ” 앨리스는 생각했다. “가족들이 모두 내가 얼마나 용감하다고 생각하겠어! 아니, 내가 우리집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난 그냥 별 것도 아닌양 아무 말도 안할꺼야!”(이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105) <r/IcebergCharts - How low can you go?>, Reddit, 2016.06.18.~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앨리스는 “지금까지 내가 몇 마일이나 떨어진 거지?”하고 소리내어 말했다. “아마 지구 가운데로 가까이 가는 중일거야. 어디 보자, 아마도 4천 마일 쯤 내려온 것 같아 -” (이처럼, 앨리스는 학교 수업 시간에 이런 류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물론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지식을 자랑하기에는 매우 좋은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말하는 것은 좋은 연습이 된다.) “그래, 대략 그 정도 거리일 거야.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의 위도와 경도는 어떻게 나타내지?” (앨리스는 위도나 경도가 뭔지는 하나도 몰랐다. 그저, 말하기에 아주 근사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곧장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구를 곧장 뚫고 지나가는 건지도 모르겠어!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걷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불쑥 나타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반감자들이겠지.”(앨리스는 이번엔 듣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단어같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곳이 어느 나라인지는 물어봐야 할 거야. 실례합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인가요?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인가요?”(이렇게 말하면서 앨리스는 무릎을 굽혀 예의바르게 인사하려고 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허공에서 무릎을 굽히는 멋들어진 인사라니!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를 얼마나 무식한 여자애라고 생각하겠어. 아니지, 절대 물어보지 않을거야. 아마 나라 이름이 적혀 있는 곳은 없는지 찾아봐야겠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딱히 달리 할 게 없어서, 앨리스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밤에 다이나가 날 무척 그리워하겠지. 그렇고 말고!”(다이나는 고양이이다.) “티타임에 다아나에게 우유 주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는데. 내 사랑스러운 다이나야! 너도 여기 같이 내려 왔으면 좋았을걸. 공중에 쥐가 없긴하지만, 박쥐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쥐랑 아주 비슷하잖아. 근데 고양이가 박쥐를 먹나?”앨리스는 약간 졸음이 와서 마치 꿈을 꾸는 듯이“고양이가 박쥐를 먹나? 고양이가 박쥐를 먹나?”하고 중얼거렸다. 가끔은 “박쥐가 고양이를 먹나?”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앨리스는 두 질문 모두 답할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앨리스는 깜빡 잠이 들고 있었고, 급기야 다이나와 손을 잡고 산책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꿈에서 다이나에게 사뭇 진지하게 “다이나야, 이제 사실을 말해줘. 박쥐를 먹어본 적 있니?”하고 물었다. 그 때 갑자기, 쿵! 쿵! 소리를 내며 앨리스는 나무가지와 마른 잎 뭉치에 떨어졌다.

다 내려온 것이었다.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06) “Cicada 3301”,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107) <Webdriver Torso>, Youtube, 2013.03.08.~

108) “Elsagate”,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엘사게이트"는 2016-17년 경 유튜브에 업로드된 다수의 아동용 영상들이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소재와 상황을 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흔히들 '노(란)딱(지)'라고도 부르는 강력한 규제 정책이 20년대 초반인 지금과 같은 정도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에 속하는 여러 영상들이 이 시기를 전후로 본격화될 온라인 호러, 그러니까 분명한 제작 주체 하에 정교한 로어화를 이루는 유형보다 훨씬 더 그 이전의 시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해당 영상들이 마치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기호(즉, 유명 프랜차이즈들의 캐릭터)와 선정적인 소재들을 임의 선택해 자동 제작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의 쇼크 싸이트와 혐짤들처럼 겉면뿐인 이미지가 충격파를 담고 습격해오는 건 유사하지만, 전자가 완전한 익명성 속에서 송신의 주체가 실종되었다면, 후자는 송신의 주체 자체가 비확정적이지요. "알고리즘"이라는 표현이 그토록 이러한 영상들에 많이 덧붙여지며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실제 주체성을 가지고 악의를 발휘하는 경우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온라인 상에 편재하게 된 힘이 자동화된 우연성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싶지요. 이 "알고리즘"들은 조금은 뜬금없게 느껴질 시티 팝 레코드를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자동생산 콘텐츠 지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이 동일한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점이, 온라인 상에서 접할 수 있을 가장 현대적인 공포를 일으킬 테고요. 자동화의 공포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이후에 다뤄보아야겠군요. 아무튼 간에, 이에 대해 조금 더 재미난 "콘텐츠"를 보고 싶다면, 한글 자막이 없긴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비디오 에세이 채널인 <그게 대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건데? (What's So Great About That)>의 "자동화된 디스토피아와 역대 최악의 관광지"를 추천드립니다. 저 TEDx 영상에 나오는 제임스 브라이들(James Bridle) 또한 이 영상에서 인용되고요.

109) “Google and the accidental mystery of Webdriver Torso”, J.Trew, Engadget, 2014.06.06.


결국 웹드라이버 토르소는 유튜브의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미스터리가 유튜브보다 상위에 위치한 힘들을 죄다 훑고 온 후, 바로 그 힘들에 의해 다시 유튜브 안쪽의 이스터 에그로 고정되어버렸군요.

110) The Great Awakening

2005년의 포챈은 “야 /b/ 새 괴물이나 만들자”라고 제안해서 레이크를 만들었더랬지요. 그로부터 약 10년 뒤의 포챈과 그 주위의 플랫폼들을 떠돌아다니는 익명의 정체 없는 집단은 2014년의 '게이머게이트(gamergate)'로 대표되듯, 수많은 자체제작 음모론을 통해 집단적인 온라인 테러('포챈'이라는 플랫폼의 정체성이라는 게, 다른 모든 온라인 플랫폼이 그렇듯 갈수록 옅어지는 과정에서 보다 과격하게 움직였던 이들은 '에잇챈(8chan)'으로 갈라졌다 하지요)를 감행했습니다. 2016년의 미국 대선 정국에서 이는 민주당 진영의 음모론적 공격의 일종인 '피자게이트 (pizzagate)'로 이어졌으며, 온갖 음모론이 가짜 뉴스로서 돌아다니며 기어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지던 시기, 큐아넌(QAnon)은 영미권 음모론의 거의 모든 소재들을 전부 다 하나의 종합된 음모론으로 로어화하면서 탄생한 셈입니다. 그리고 큐아넌들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때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한 해 정도가 지났던, 2017년 가을 즈음이었지요. 여기서 저는 애초의 '큐아넌'이라는 집단명의 Anon이, 포챈과 해당 계열 웹 사이트들에서 익명의 유저들을 칭하는 '아넌 (Anon)'에서 따왔다는 걸 짚고 싶은 한편, 피자게이트의 2014년에서 큐아넌의 2017년까지의 여정이 4부가 다루는 시간대와 적절하게 겹쳐 있다는 점도 재차 강조하고 싶습니다. 로어화는 언제어디에서나 또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는 도구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띤 도구입니다.

여담

[대체 현실 유령]을 작업하며 가장 신경 썼던 점이 있다면, 바로 이 4부를 기점으로 둔 양쪽의 시기를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을지였습니다. 저에게는 크리피파스타와 ARG 등의 시기가, 이후의 장들에서 다루게 될 보다 더 '현대'적인 시기들과 꽤나 분리되었다고 느꼈거든요. 그것은 여러모로 묘한 일이기도 합니다. 당장에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웹사이트 화면에 나뒹구는 살덩어리와 귀신 짤들을 보면서 겁에 질려댔던 것만 같은데, 어느새 그러한 점프 스케어로만은 설명할 수 없을 무언가가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으니까요. [대체 현실 유령]은 사실 그렇게 단절되어 있게 느껴졌던 시간을 사후적으로 의미화하는 작업이기도 했지요. 4부가 너무 많은 정보 값들로 정신 없을 것 같은 게 걱정되는 와중에 그럼에도 가장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텝니다.

그럼에도, 저는 단순히 [대체 현실 유령]에 언급된 작업물들뿐만 인터넷의 이러한 사정과 궤를 같이 하던 다른 작업물들에서도 비슷한 로어화의 징조를 느끼곤 합니다. <FNAF> 시리즈의 인기와 꽤나 맞물려 있을 2017년작 <밴디와 잉크기계 (Bendy and the Ink Machine)>를 비롯한 인디 호러 게임이라거나, 마찬가지로 2012년부터 공개를 시작한 호러 픽션 팟캐스트 <웰컴 투 나이트베일 (Welcome to Nightvale)>이나 비슷한 시기 방영을 시작한 미국 애니메이션 <그래비티 폴즈 (Gravity Falls)>, 아니면 2009년부터 2016년까지의 연재된 웹코믹인 <홈스턱 (Homestuck)> 등의 작품들이 매력적인 캐릭터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와 얽혀 있는 떡밥들을 넌지시 찔러보는 것부터 극단적으로 배배 꼬아놓는 것까지 늘어 놓으며 '로어'를 지시하고, 이에 달라붙어 분석질을 실시하는 꽤나 충실한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 등이 그렇죠. 로어화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퍼져나간 때가 이 즈음이지 않을까요.

이 장은 2014년부터 2017년 정도까지라 둘 수 있을 과도기를 다룹니다. 선형적인 연대기에 따라 서술하기보다는 주제에 맞춰서 시간들이 뒤엉켜 있는지라, 이 시기 동안에 일어난 일과 탄생한 작업물들은 [대체 현실 유령] 전역에 흩뿌려져 있지요. 그러므로 이 여담란을 이용해서, 그리고 이후의 장들까지 일단 다 읽고 오셨다는 전제 하에, 이 때까지의 타임라인을 조금 알아먹을 수 있는 식으로 그려보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특히나 2016-7년을 통과하는 기간이, 어쩌면 이 '온라인 호러'라는 양식이 분명하게 '현대'에 진입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렇습니다. 쇼크 사이트와 크리피파스타의 시기도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진행되는 것만 같은 인터넷의 속도상 금세 옛것이 되었고, 아마 그나마 '현대'적이라 느껴질 14-17년도 이후의 작업물들도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요.